사진 속 모습처럼,
낡은 철문에 걸린 작은 옷들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한 벌 한 벌, 색도 모양도 다 다르지만 햇빛을 머금은 모습이 정겹고 따뜻합니다. 그유나 공동체에 속한 13개의 종족의 아이들은 언어도, 문화도, 역사의 아픔도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름받았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뿌웨(잔치)를 좋아합니다. 집들이 잔치(에잉띳 뿌웨), 결혼 잔치(밍글라싸웅 뿌웨) 등, 이처럼 이들은 뿌웨를 즐깁니다. 우스갯소리로, 오죽하면 전쟁을 버마말로 "씻 뿌웨"라고 표현할까 싶습니다. 잔치를 통해 젊은이들은 짝을 만나기도 하고, 가난한 이들도 없는 형편 중에 서로를 초대하며 함께 살아갑니다.
그런 미얀마가 울고 있습니다. “밍글라바!” 인사처럼 듣기만 해도 반갑고, 동그란 햇살 같은 그 눈들이 울고 있습니다. 보이는 홍수와 지진, 그리고 지리멸렬한 내전을 통해 원수는 분열시키고 섞어버리며, 붕괴시키는 고난의 연속을 안깁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편 119편 71절 말씀처럼 고백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이 유익이라니, 세상의 눈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말입니다. 하지만 고난을 통해 우리는 더욱 주를 의지하게 됩니다. 이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의 항구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딛고 우리가 서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고난은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하십니다. 가짜와 삯꾼을 걸러내십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옛사람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벗겨내십니다. 이처럼 고난은 내 밖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찢어 인내 속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 고난은 서로에게 유익이 됩니다. 나도 어렵지만 더 가난하고, 더 아픈 사람을 향한 연민과 사랑이 더 깊어지게 합니다. 내가 보이지 않습니다. 나의 부족함보다 “너만은 살아야만 한다!”는 공동체의 필요가 먼저 보이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의 죽으심을 딛고 그 위에 서 있습니다. 내 발 아래 밟히는 주님의 시체를 딛고, 그분의 고통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진실로 “승리는 주와 함께 견딤”이라는 말씀이 큰 산처럼 다가옵니다.
낡은 철문에 걸린 젖은 옷들처럼, 수많은 미얀마 영혼들이 오늘도 어디서 비바람이 불어올지 몰라 아파하며 펄럭입니다. 이 땅에서 태어났기에, 함께 비를 맞고 또 함께 마릅니다. 함께 살아갑니다. 우리는 가족입니다.
이 다채로운 반바지의 행렬은 그유나 공동체의 모습이자,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각양 색깔이 다르면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오히려 더 풍성하게 드러납니다. 마치 요셉에게 입히신 채색 옷처럼, 하나님의 빛으로 나타납니다. 이 작은 마당에서의 행복. 우리는 매일 "Many Colored Kingdom" 을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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