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내리고 다시 보내어지는 공동체 ”

공동체 생활을 함께하다 보면 좋은 것만 함께 나누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프면 함께 아프고, 어려운 시간이 오면 그것도 함께 지나가게 됩니다.
지난 몇 주 동안 그유나 식구들 대부분이 집단적으로 독감에 걸려 함께 고생했습니다. 한 사람이 조금 나아지면 또 다른 사람이 아프고, 그렇게 서로 돌보며 몇 주를 보냈습니다.
요즘 이곳의 날씨도 참 변덕스럽습니다. 모두 건강 조심하시기를 바랍니다.
대나무 숲에서 시작된 그유나 공동체가 어느덧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작은 움이 돋아 가지를 뻗듯 다른 지역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무엇을 계획해서 이루었다기보다, 이곳에서 함께 말씀을 배우고 예배하던 사람들이 때가 되어 자기 고향과 자기 종족에게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다시 몇 사람과 말씀을 나누고 예배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작은 공동체들입니다.
오늘은 따웅지만 아니라 미얀마 여러 지역에 심겨져 작은 예배 공동체를 이루어 가고 있는 그유나의 몇 지체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아래의 사역자들은 모두 지난 몇 년 동안 그유나에서 함께 생활하며 말씀 훈련을 받았고,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그 지역의 영혼들을 섬기며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동역자들입니다.
1. "빛된 ㄱ회"
따 전도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21년이었습니다.
내전이 시작되고 미래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던 큰아들 이삭이 먼저 그유나에 합류했습니다.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며 말씀을 배우는 동안 주께서 이삭의 삶을 조금씩 만져 주셨고, 지난 4월에는 좋은 성적으로 대입시험도 마쳤습니다.
자기 종족 마을에서 2년 동안 의료 봉사하면 따웅지 의대에 진학할 수 있는 특별전형과 같은 길이 있다고 하여 이삭은 현재 따웅지 의대 진학을 함께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들 이삭의 변화를 곁에서 지켜보던 아버지 따 전도사님도 그유나에서 함께 말씀 훈련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돌아보면 지난 5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외국인과 현지인이 참된 영적 신뢰를 쌓아간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말씀 앞에 함께 앉고, 함께 먹고, 함께 예배하는 시간을 지나면서 주께서 조금씩 우리를 한 지체로 묶어 주셨습니다.
그동안 ‘빛된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함께 예배해 왔고, 2026년 4월에는 작은 ‘빛된 교회’ 예배당도 완공되었습니다.
현재 빛된 교회는 약 50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주중에는 매일 오전 6시에 따 전도사님이 새벽예배를 인도합니다. 토요일 오후에는 주일학교 어린이 약 20명과 청소년 14명이 성경을 공부합니다.
이를 위해 그유나 선생님들이 금요일에 그곳으로 가서 아이들과 생활하며 주일예배까지 섬긴 뒤 돌아옵니다.
매달 마지막 주일에는 그유나와 빛된 교회가 서로의 공동체를 오가며 연합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유나에서 파송한 청소년부 전도사가 바로 따 전도사님의 큰아들 이삭입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이삭에게 제가 자주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어디에 있든지 말씀을 잘 가르치는 좋은 의사가 되거라.”
교회명: 빛된 교회
사역자: 세야 따(48세)
종족: 꺼얀 종족
초등부·중고등부 교사: 이삭, 에스더
지역: 삔뻿 지역(따웅지에서 약 1시간)
2. "바고 가정ㄱ회"
무무 전도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20년 양곤에서 있었던 부흥집회였습니다.
약 2,000명이 모였던 집회였는데, 그곳에서 처음 만난 자매가 얼마 후 따웅지로 이사한 저에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았으니 보따리를 싸서 따웅지로 올라가겠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올라와 약 2년 동안 함께 먹고 생활하며 예배하고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훈련을 마친 후 다시 자신의 고향 바고로 돌아갔습니다.
무무 전도사님의 고향은 버마족 불교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가족에게서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마을과 떨어진 곳에 따로 대나무집을 짓고 살아야 했고, 농사 외에는 마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면서도 전도사님은 그곳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주변 사람들과 다시 관계를 쌓기 시작했고, 2024년부터는 마을 어린이들을 집으로 불러 밥을 먹이고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과부들을 집으로 초청해 함께 밥을 먹으며 복음을 나누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 사람, 두 사람이 모여 지금은 집에서 열 명 남짓 함께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작은 가정예배가 어느덧 2년 가까이 되어갑니다.
무무 전도사님은 격주마다 그유나 선교부 그룹방에 현장 사진과 기도제목을 보내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 자주 찾아갈 수는 없지만, 보내오는 사진 속에서 아이들이 말씀을 듣고 몇 사람이 둘러앉아 예배드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가 같은 몸으로 연결된 또 하나의 그유나 공동체임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명: 바고 가정ㄱ회
전도사: 무무(42세)
종족: 버마족
지역: 바고 지역(따웅지에서 버스로 약 8시간)
3. "정글ㄱ회"
XX 목사님은 현재 피난민 성도들과 함께 정글 지역을 이동하며 생활하고 계십니다.
약 40가정이 한 공동체를 이루어 어려운 상황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딸은 그유나에 합류하여 신학교 훈련을 받았고, 지금은 이곳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정글에서 제대로 교육받기 어려운 교회 공동체의 아이들 가운데 일부는 현재 그유나 학교와 빛된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양육받고 있습니다.
주변 피난민 마을의 청소년들도 이곳에서 공립 중·고등학교 교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전화 연결조차 쉽지 않은 지역이라 아이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부모님과 통화합니다. 짧은 전화 한 통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곳의 소식을 듣고, 함께 기도합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자라고 있지만 부모들은 여전히 정글에서 하루를 살아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의 상황이 좋아져 아이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그 땅과 그 종족을 위해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그유나에서 말씀으로 자란 지체들을 그곳으로 다시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 밖에도 여러 지역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나누겠습니다.
이렇게 몇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적고 나니, 결국 제 마음에 남는 것은 사역의 크기나 숫자가 아닙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하루가 빠르게 지나갑니다. 요즘은 글로 무엇을 남기는 것보다, 오늘 내 앞에 보내주신 한 사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 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주님께서 제 심비에 써 내려가시는 글은 종이 위의 글이 아니라, 그렇게 하루하루 마주하게 하시는 사람들의 마음이 주님이 가리키는 손가락인 것 같습니다.
대단한 것을 남기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무엇을 이루었는지, 무엇을 이 세상에 남길 것인지를 헤아리기보다 오늘도 주께서 허락하신 자리에서 한 사람을 또 용납하고, 서로 사랑하도록 맡겨주신 하루를 살아내고 싶습니다.
다시 복음 앞으로, 다시 한 사람 앞에서 살아가는 따웅지의 그 작은 순간들이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아버지 생명책에 새겨지는 아버지의 감동이기를 원하고 바랍니다.
내일도 멉니다.
오늘, 먼 곳의 누군가가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주셔서 그유나에서 또 하나의 그유나로 생애를 써 내려가는 주님의 편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생명의 기록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에베소서 4:2–3


사진
1. 삔뻿 ㄱ회
2. 바고 가정ㄱ회
3. 정글 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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